3년여 만에 드디어 한국에 발매되는 Lamp의 일곱 번째 정규앨범 [ゆめ(꿈)]
퇴색된 채로 태어난, 그래서 더욱 듣는 이를 뭉클하게 만드는 아스라한 사운드 Lamp 밖에는 그릴 수 없는 빛 바랜 꿈의 세계로의 초대
시간의 굴레 속에서 지나간 모든 것들의 아스라함이 귀로부터 밀려오는 환상의 경험
70년대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세이이치 하야시(林?一)'의 그림으로 완성된 섬세하고 서정적인 세계의 완성!
진화를 마친 램프, 한층 촘촘해지고 한결 유연해지다
전작 [東京ユ?トピア通信(도쿄 유토피아 통신)]의 라이너 노트에서 나는 ‘진화’라는 필터로 램프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흥미롭게도 본작 [ゆめ(꿈)] 발매 후 인터뷰에서 그들 자신도 ‘전작까지는 진화라는 점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영어로 evolution이라고 해도 그렇지만, 한자어로 진화(進化)에는 ‘나아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있다.
4번째 앨범 [램프 환상]에서 [8월의 시정], [도쿄 유토피아 통신]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분명 전방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전작의 마지막 트랙을 듣고 나니 이들이 다음 작품에서 어떤 것을 들려줄지 기대와 함께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지난번 작품까지는 녹음이 끝나도 다음 음반의 아이디어들이 계속 남아있었지만 [도쿄 유토피아 통신]은 그런 것이 없다’고 리더인 소메야 타이요(染谷大陽)가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이들이 그야말로 다 태워버린 것은 아닌가, 여기가 램프라는 밴드의 최전방이라면 이후는 변화나 퇴보인데 고고한 이들이 그런 것을 받아들일까 하는 노파심도 있었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려서 이번 앨범이 나왔지만 가장 먼저 느껴졌던 감정은 ‘만들어주었구나’하는 안도감이었다. 안도감은 음반 외적인 첫 번째 감상인 동시에 음반 자체의 첫 번째 감상이기도 했다. 오프닝 트랙 [シンフォニ?(심포니)]의 러닝 타임 ‘6분 45초’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야심 찬 기세는 음반을 재생하자마자 실제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빠르게 흐르는 구름을 음으로 형상화한 듯한 오케스트레이션 사이로 애달프면서도 어딘가 숙명적 비극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리드 신세사이저는 순식간에 우리를 램프의 최전방에 돌려놓고 마는 것이다.
[심포니]는 단순히 대작 스타일의 머릿곡이면서 여러 가지로 [램프 환상]의 첫 트랙 [?き春の一幕(덧없는 봄의 일막]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이 곡을 쓴 나가이 유스케(永井祐介)는 본작의 마지막 곡 [さち子(사치코)]를 듣고 상응하는 넘버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꿈]은 이런 식의 긍정적인 멤버 간의 라이벌 의식 및 시너지 효과가 완전히 복원된 음반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메야 타이요는 음반 내에서 점점 나가이의 곡 비중이 줄어가는 것을 의식해서 이번 음반에는 무조건 5곡, 그러니까 음반의 절반을 써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장인을 연상케 할 만큼 꼼꼼한 모습과 함께 한결 유연해진 램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밴드 역사상 최초로 외부 편곡자가 참여했는가 하면, 객원 보컬인 신카와 타다시(新川忠)가 [ため息の行方(한숨의 행방)]을 사카키바라 카오리(?原香保里)와 듀엣으로 부른 것도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다.
진화를 완료한 밴드의 여유라고 할까? 어깨 힘을 뺀 [사치코]의 편곡도 이채롭지만 [6?室(6호실)]의 딜레이 효과가 걸린 하프 사운드나 간주를 대체하는 내레이션도 이전과는 다른 면모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레이션은 사카키바라가 로베르 브레송의 영화 [백야]를 보고 가진 느낌을 바탕으로 램프와도 각별한 사이인 다니엘 권(Daniel Kwon)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녹음했다고 한다.
시각적으로도 램프의 세계를 듬뿍 만끽할 수 있어 즐겁다. 와키타 유스케(脇田祐介)와 사카키바라가 각기 만든 [심포니]와 [사치코]의 비디오 클립도 이들의 세계가 이번 음반에서 가장 잘 안착해있음을 보여준다.
70년대 영컬처를 대표했던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하야시 세이이치(林?一)의 작품을 사용한 음반 커버는 그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는 이 그림은 가사에 등장하는 ‘레코드’, ‘옆 얼굴’, ‘담배 연기’ 등의 이미지들과 어우러져 풍부한 배음을 자아낸다.
또한 하야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적색 연가(赤色エレジ?)]의 여주인공 이름이 사치코라든지(가사를 쓴 사카키바라에 따르면 모리 오가이의 소설 중 여주인공 이름으로 된 작품들의 느낌을 내고 싶었던 것으로, [적색 연가]를 의식하진 않았다고), 램프가 가사에서 구현하고 싶어하는 세계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핫피 안도(はっぴ?あんど)의 첫 번째 음반 커버를 담당한 것이 하야시라든지 하는 식으로 이어져 있기도 하다.
램프의 가장 훌륭한 음반이 무엇인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의 세계관이 가장 밸런스 좋게 구현된 한 장을 꼽으라면 나는 본작 [꿈]을 들 수 있으리라. 소메야는 인터뷰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 내게 최고의 팝’이라고 한 바 있다. 한편 나가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음악은 빛 바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작부터 빛 바래져 있기 때문에’. 퇴색된 채로 태어난, 그래서 더욱 듣는 이를 뭉클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램프 음악 세계의 매력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음악을 듣는 그 순간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야 마는 시간의 굴레 속에서 지나간 모든 것들의 아스라함이 귀로부터 온몸으로 퍼져가는 환상과도 같은, 아니 꿈과도 같은 경험. 이 음반을 듣는 여러분 모두가 그들이 데려가는 빛 바랜 꿈의 세계로 한 발짝 들어서 보길 바란다.
- 2014. 9월 정바비 (bobbychung.com)
최근작 [꿈]과 전작 [도쿄 유토피아 통신]은 단편집을 보는 듯한 인상입니다. 앨범 단위보다는 싱글 각개의 힘에 집중하고 집중된 힘을 기총소사하듯이 날리는 느낌입니다. 물론 일점사 못지 않은 파괴력을 보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혹자는 이 작법의 기반을 AOR/ City Pop을 드는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저 음악들이 전형적으로 70년대 말, 80년대 초의 버블기에 닿아있는 정서이며 무엇보다도 풍윤합니다만 이 앨범의 풍윤함에는 저 시기의 것처럼 반짝임이 아닌 아스라함이 있습니다.
팝의 편성에 극도의 윤기가 더해진 것은 60년대 중후반,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반의 합계 17,8년 정도의 세월이 아닐까 하는데 저 중 전기의 것에 더욱 닿아있습니다. 특히 무그(Moog)를 비롯한 빈티지 신세사이저의 운용은 그를 더 적확하게 담아냅니다. Barry Mann, Moody Blues, 때로는 Novos Baianos같은 폴리리듬까지 응당 녹여내야 할 것을 잘 녹여냈다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UK 바로크 팝 스타일의 몽롱한 애시드 필링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램프는 저 음악들보다 최소 10년은 더 예스러운 정서이며 미국 서해안과 도쿄의 정서보다는 유럽/ 브라질리언의 정서를 가져옵니다. 또한 그 앙상블이 전작들처럼 한 곡에 수없이 많은 다채로운 악기들로 채색하는 것을 꾸준히 실현합니다.
그러니까 레퍼런스가 Steely Dan의 "AJA"가 아닌 차라리 Gal Costa의 “Legal”이나 Milton Nascimento의 "Clabe de Asquina"라든가 60, 70년대의 유러피언 바로크팝/싸이키델릭 팝 혹은 GDM이나 CAM혹은 De Wolfe같은 레이블의 최전성기에 나왔던 OST/라이브러리를 드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아마 그래서 처음에 이들을 시부야케이에 가깝게 포지셔닝시켰던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음악은 비일본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결국 일본밴드라는 에토스를 포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키요에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의 전개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몰라도 아직도 우키요에를 보면 르누아르(실제로 르누아르는 상당한 호쿠사이의 콜렉터이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를 생각하는 것처럼 고도의 기예와 예상치 못한 컷의 전개가 한때의 화풍의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처럼 램프의 전개는 대체로 예기치 못하는 독특한 부분이 많고 코드의 전개 또한 바비님이 언급하셨듯 분방하면서도 고도의 전개가 보입니다.
게다가 폴리리듬을 이렇게 철저하고 의욕적으로 구사했던 일본밴드는 제 생각에는 일찍이 보기 드물었지 않나 합니다. 굳이 선배들을 보자면 80년대에 걸쳐있는 오누키 타에코의 음악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는 있습니다.
램프는 아름다운 꽃이라기보단 향이 좋은 꽃입니다. 장미라기보다는 금목서랄까요? 하지만 이 향기는 의외로 애매모호하지 않고 일도양단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레 자기만족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야마시타 타츠로가 완성한 60, 70년대 미국 대중음악의 가장 창조적인 계승은 없지만, 대신에 오누키 타에코의 60, 70년대 유럽음악의 가장 창조적인 계승은 있습니다. 분방하고 미로 같은 전개에서도 하나의 등대로 나아가는 구심점이 명확한 것이 이들의 음악이 가장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네, 너무도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진부할 정도로 흠뻑 반할 수 있는 음악입니다.
*같이 들어보면 좋을 듯한 앨범 10선
1. 大貫妙子(오오누키 타에코) - SUNSHOWER
2. Ornella Vanoni ? Dettagli
3. Rorberto Pregadio - O.S.T.IL MEDICO LA STUDENTESSA
4. Marcos Valle ? Marcos Valle
5. Francoise Hardy ? Entr'acte
6. Billy Nicholls - Would You Believe
7. La Bottega Dell'Arte ? Dentro
8. Smith & D'Abo ? Smith & D'Abo
9. Chris Rainbow - Home Of The Brave
10. Harmony Grass ? This Is Us